다이어리가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였습니다.
커피박 재생가죽으로 케이스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왔습니다. 한국 밖에서 들어온 첫 번째 B2B 주문 요청이었습니다. 소재가 한국 시장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첫 번째 신호였습니다.
다이어리가 문을 열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출시한 다이어리는 소비자 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B2B 문의를 만들어냈습니다. 소재 이야기가 담긴 제품이 공개되는 순간, 그 소재를 자신의 제품에 쓰고 싶다는 쪽에서 연락이 오는 경로가 생기게 된 것이였습니다.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가 브라운스킨을 찾아온 경로는 소재의 이야기였습니다. 커피박을 재활용한 가죽이라는 콘셉트, 그리고 그것으로 만든 실제 제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래 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이어리는 단순한 첫 번째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재생가죽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레퍼런스였습니다.
화장품 케이스는 다이어리와 용도가 다릅니다.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물건이 아니라, 화장품 브랜드가 자사 제품과 함께 패키징하거나 별도 판매하는 아이템입니다. 브라운스킨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유명브랜드의 B2B 납품 계약이 성사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화장품 케이스가 요구하는 것들
화장품 케이스는 소재에 대한 요구사항이 다이어리와 다릅니다. 네 가지가 기준이 됐습니다. 내구성, 촉감, 소취, 고급감입니다.
내구성은 다이어리와 유사한 수준이 기준이 됐습니다. 화장품 케이스는 파우치처럼 자주 열고 닫히거나 가방 안에서 다른 물건과 마찰하는 환경에 놓입니다. 표면 코팅이 벗겨지거나 모서리가 닳는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촉감은 다이어리보다 요구 수준이 높았습니다. 화장품은 손에 들고 사용하는 제품입니다. 케이스도 손에 자주 닿습니다. 표면의 질감이 고급스럽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 클라이언트의 요구였습니다. 재생가죽의 균일한 표면이 이 부분에서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부위별 물성 차이 없이 균일한 면이 나오기 때문에, 같은 로트 안에서 촉감의 편차가 없습니다.
소취는 예상하지 못한 쟁점이 됐습니다. 화장품에는 향이 있습니다. 케이스 소재에 커피박 특유의 향이 있으면, 두 향이 섞이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향의 균형이 소취 기능만큼 중요한 조건이 됐습니다. 커피박 함량과 표면 처리 방식을 조정해 향의 세기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소재 사양을 결정했습니다.
고급감은 클라이언트가 가장 먼저 언급한 조건이었습니다. 유럽 화장품 시장에서 패키징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일부입니다. 소재 이야기가 아무리 좋아도, 손에 들었을 때의 인상이 브랜드 이미지와 맞지 않으면 채택되지 않습니다. 재생가죽이 고급감을 전달할 수 있는지가 계약 성사의 핵심 변수였습니다.
작을수록 어렵습니다
화장품 케이스는 다이어리보다 폼팩터가 작습니다. 다이어리 표지는 A5 크기 전후의 넓은 면적을 다루는 작업이지만, 화장품 케이스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정밀한 가공이 필요합니다. 면적으로 보면 다이어리 표지 사용량의 4분의 1 이하 수준이지만, 가공 난이도는 오히려 높습니다.
작은 부품일수록 재단 정밀도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다이어리 표지에서 1~2mm의 재단 편차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화장품 케이스에서 같은 편차는 마감 품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모서리의 각도, 재봉선의 간격, 표면의 압착 균일성이 더 작은 공차 안에서 관리되어야 합니다.
재생가죽 소재의 균일성이 이 단계에서 다시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천연가죽은 부위별 물성 차이가 있어 작은 부품을 재단할 때 어느 부위의 가죽인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재생가죽은 어느 위치에서 재단해도 같은 물성이 나옵니다. 작은 폼팩터 가공에서 이 균일성이 실질적인 공정 이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소재 이야기가 유럽에서 작동하는 방식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가 커피박 재생가죽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소재 자체의 성능만이 아니었습니다. 소재의 출처와 그것이 만들어진 방식이 브랜드 메시지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봤습니다.
유럽 시장에서 소재의 기원은 제품 기획 단계부터 검토됩니다. 어떤 소재를 썼는지, 그 소재가 어디서 왔는지, 제조 과정에서 어떤 폐기물이 발생하는지가 패키징 선택의 기준에 들어옵니다. 이것은 소비자 요구의 반영이기도 하고, EU 차원의 제품 정보 공개 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흐름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브라운스킨에서 사용하는 커피박이라는 원료는 이 맥락에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소재입니다. 카페에서 매일 발생하는 폐기물, 그것을 가죽 소재에 결합한 공정, 그 결과로 줄어드는 폐기물량 등. 이야기의 구조가 단순하고 검증 가능합니다.
클라이언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이유가 소재 성능 때문인지, 소재 이야기 때문인지를 분리해서 보기 보다는, 모두 고려의 대상이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밖에서도 통한다는 것
프랑스 케이스 프로젝트를 마무리 한 후 생각했습니다. 커피박 재생가죽이라는 소재가 한국 시장 밖에서도 구매 결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에서 소재 이야기가 작동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국내에서는 소재의 참신함과 국내 원료 활용이 관심을 만듭니다. 해외, 특히 유럽에서는 소재의 추적 가능성과 폐기물 저감 구조가 더 직접적으로 구매 기준에 연결됩니다. 같은 이야기지만 강조점이 달라집니다. 이 차이를 직접 경험한 것이 이 프로젝트의 성과였습니다.
소재 스펙 측면에서도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화장품 케이스 납품을 통해 소취 성능과 촉감이 해외 클라이언트에게 검증 가능한 기준으로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소재 데이터를 영문으로 정리하고 샘플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이후 해외 B2B 영업의 기초가 됐습니다.
